18년 동안 맞기만 했던 홈런...박주아, 한국 여자야구 국제대회 사상 첫 아치

한국여자야구연맹
202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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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여자야구 월드컵 호주전 3회 좌월 3점포
2008년 국제대회 첫 출전 이후 18년 만에 터진 첫 홈런
한국 여자야구의 새 역사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한국 여자야구 사상 첫 국제대회 홈런이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한국 여자야구 사상 첫 국제대회 홈런이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공은 좌측 담장을 넘어갔다. 한국 여자야구가 국제무대에서 그간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26일(한국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록포드에서 열린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주관 '2026 여자야구 월드컵' 그룹 스테이지 4차전인 호주전. 0-6으로 끌려가던 3회초 2사 1, 2루에서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유격수 박주아(22)가 호주 선발 앨리슨 베베레의 7구째 시속 110km 직구를 통타했다. 타구는 좌측 담장을 넘었다. 야구 월드컵과 아시안컵 등 모든 여자야구 국제대회를 통틀어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홈런이었다.

한국 여자야구가 국가대표팀을 꾸려 국제대회에 나선 것은 2008년 일본 에히메현 마쓰야마에서 열린 제3회 여자야구 월드컵이 처음이다. 올해로 10회째를 맞은 월드컵. 첫 출전 이후 18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홈런이, 이날 박주아의 배트에서 나왔다.

이날 경기는 3-13으로 졌다. 박주아의 3점포는 이날 한국의 유일한 득점이었다. 그러나 이 홈런이 넘은 것은 담장만이 아니었다.

풀카운트, 7구째...맞는 순간 "느낌이 없었다"

기회는 만들어서 온 것이었다.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손가은이 좌전 안타로 나갔고, 2사 1루에서 양서진의 타구를 상대 2루수가 처리하지 못해 2사 1, 2루가 됐다. 1회에만 6점을 내준 경기. 여기서 득점을 못 내면 따라갈 수 없었다.

"안타를 못 치면 점수를 못 내잖아요. 무조건 뭔가 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박주아는 초구 볼을 침착하게 골라냈다. 3볼 1스트라이크의 유리한 카운트에서 공을 파울 두 개로 걷어내며 타이밍을 조준했다. 두 번째 파울은 자신의 왼쪽 다리에 맞고 떨어졌다.

"다리에 공을 세게 맞고 나니까 오히려 힘이 풀렸어요. 아프니까 자연스럽게 힘이 안 들어가더라고요. 하하."

풀카운트. 게다가 2아웃이었기에 상대 투수가 승부구를 무조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던질 타이밍이었다. 박주아는  빠른 공인 직구를 예상했다.

"투수가 직구를 던질 걸 알고 있었어요. 타이밍만 조금 더 앞쪽에서 간결하게 치자고 다짐했어요. 진짜 전혀 힘 안 들이고 쳤는데, 맞는 순간 느낌이 없었어요. 지금도 기억이 안 나요."

흔히 홈런 타자들은 "공이 너무 잘 맞으면 손에 감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손맛이 나지 않을 만큼 잘 맞은 타구인 것이다. 홈런 타자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지만, 정작 본인은 처음엔 홈런인 줄도 몰랐다고 한다.

"처음부터 홈런이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타구가 멀리 뻗어서, '가겠다' 하고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넘어가더라고요."

이날, 중계 카메라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박주아는 쭉 뻗어나간 공이 좌측 담장을 넘기는 걸 보자마자 대표팀 선수단이 있는 더그아웃을 손가락을 가리키며 동료들과 가장 먼저 자축한 뒤, 베이스를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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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사진은 역사적인 홈런의 순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처음 도는 베이스

박주아에게 이것은 대표팀의 첫 홈런이기 이전에, 성인 구장에서 친 인생 첫 홈런이었다. 리틀야구 시절 작은 구장에서 쳐본 게 전부였다. 그 첫 홈런을 태극마크를 달고, 중요한 순간,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쳤다.

"베이스를 도는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저희는 항상 국제대회에서 홈런을 맞는 것만, 상대가 유유히 베이스를 도는 것만 유격수 자리에서 씁쓸하게 봤거든요. 제가 직접 도는 건 상상도 못 했어요. 홈런 치고 내가 베이스를 빨리 뛰어야 되나, 늦게 뛰어야 되나,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어요."

3루를 돌 때 3루 주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했고, 홈을 보니 홈에는 이미 대표팀 동료들이 다 나와 있었다.

"'우리도 드디어 해냈다, 우리도 홈런이란 걸 칠 수 있다'는 걸 홈을 밟는 순간 느꼈어요. 고등학교 1학년(2020년)부터 매년 태극마크를 달아왔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가슴팍에 박힌 태극마크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더그아웃에서 가장 먼저 달려와 부둥켜안은 것은 대표팀 막내, 2010년생 박민교였다. "민교가 저를 막 부둥켜 안으면서 '언니, 저 진짜 야구하면서 한국 여자 선수가 이렇게 홈런 치는 거 처음 봤어요. 저희 더 높이 가봐요' 하더라고요."

10년 넘게 대표팀을 지켜온 베테랑들의 말은 조금 달랐다. 대표팀엔 투수 김보미, 내야수 강정희, 그리고 플레잉코치로 함께하고 있는 어제인이 베테랑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언니들이 그러더라고요. 10년 전이 아니라 4, 5년 전에도 우리나라 팀이 홈런을 칠 거라는 걸 정말 상상도 못 했었다고. 이 일이 정말 일어날지 몰랐다고, 그걸 네가 해내줘서 고맙다고요. 마음이 너무 뭉클했어요. 울진 않았지만요. 하하."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사진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박주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렸다. 사진은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오는 박주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3년 전, 쓰라렸던 캐나다 선더베이의 밤

박주아는 어릴 때부터 대표팀에서 두각을 드러낸 에이스이자 주전 유격수다. 그러나 3년 전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2023 여자야구 월드컵은 그에게 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처음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룬 무대. 5경기에 모두 나섰지만 12타수 1안타, 타율 0.083에 그쳤다. 강점인 수비에서도 실책 6개를 범했다.

"2023년 월드컵 때는 정말 모든 경기가 그랬어요. '아, 제발 나한테 타구가 오지 마라, 찬스가 걸리지 마라.' 조급해지면서 제 퍼포먼스를 못 보여드렸어요. 국제대회를 가다 보면 힘이 더 들어가고, 내가 조금 더 해내야 될 것 같고. 그런 생각 때문에 오히려 제가 가진 걸 많이 못 보여줬어요."

3년을 갈았다. 타격에서는 힘을 빼고 정확하게 맞히는 세팅에 집중했고, 지난해 7월부터는 웨이트로 근육량과 민첩성을 끌어올렸다. 키가 더 크거나 다리가 길어지는 것은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국제무대 선수들에게 비빌 것을 찾았다.

올해의 박주아는 국제대회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아직 멕시코전 한 경기가 남았지만, 4경기 만에 타율 0.455(11타수 5안타)를 기록했다. 5안타 중 3개가 장타(2루타 2개, 홈런 1개)이고 타점도 7개나 올렸다. 순도 높은 활약이다. 수비에서는 무실책 '퍼펙트' 경기를 기록하고 있고, 병살 수비를 두 차례 완성했다. 호주전 전날 열린 홍콩전(16-10 승리)에서는 담장을 살짝 벗어난 파울 홈런성 타구를 두 개나 날리며 감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모든 타자들이 너무 잘해주고 있어요. 제가 여기서 못 쳐도 계속 찬스가 만들어지고, 우리가 더 좋은 상황을 만들 거라는 믿음이 확실히 있어요. 저에 대한 믿음, 그리고 우리 팀 동료들에 대한 믿음. 거기서 오는 자신감인 것 같아요. 이번 대회에서는 '나한테 오지 마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박주아의 ⓒ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첫 홈런볼.ⓒ한국여자야구연맹 제공


'만만한' 상대로 보이며, 쉬어가는 경기이고 싶지 않았다

박주아가 이번 대회 내내 깨고 싶었던 것이 있다. 바로 편견이다.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신체조건이 좋은 국가 선수들은 전혀 우리를 견제하지 않고, 쉬어가는 경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약하고, 장타를 못 치는 팀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어요. 이번 대회 때 정말 그걸 깨고 싶었어요. 그래서 매 경기 선수들과 얘기했어요. 우리, 할 수 있는거 다 해보자고요."

홈런의 쓰라림을 누구보다 많이 아는 한국 여자야구 대표팀. 그래서 이 한 방의 의미를 팀 전체가 안다.

"동생들도, 언니들도 '야, 우리도 이제 홈런 칠 수 있다. 홈런 타자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다음 경기에 자신감을 확실히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서, 그게 오히려 마음이 너무 뭉클했어요."

박주아는 올해부터 미국 여자프로야구리그(WPBL) 샌프란시스코 파이어벨스 소속으로 프로 무대를 밟는다. 한국 여자야구의 첫 홈런을 친 유격수가, 이제 후배들에게 보여줄 다음 길이다.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린 뒤 홈을 들어올 때 그를 환하게 맞아주며 축하한 대표팀 선수단.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박주아가 26일(한국시간) 호주와의 월드컵 조별 스테이지 4차전에서 좌월 3점 홈런포를 쏘아올린 뒤 홈을 들어올 때 그를 환하게 맞아주며 축하한 대표팀 선수단.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항상, 제가 후배 여자야구 선수들을 위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나 싶어 스스로 답답한게 많았어요. 그런데 오늘 느꼈어요. 선수는 선수답게 경기에서 매 순간 최고의 활약을 하는 것. 그것이 선수로서 후배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요. 오늘 홈런은 그런 의미에서 제게 의미가 큽니다."

경기는 졌고, 홈런 하나로 순위가 바뀌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날 이후 한국 여자야구는 처음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다음엔 역전 홈런, 가보자."

여성신문  황혜정 객원기자 twinshae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