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자의 앵글]
WPBL 트라이아웃 통과한 김라경·김현아·박주아 선수
11월 드래프트 ‘눈앞’...한국 최초 '프로 여자 야구 선수' 도전
여자야구 아시안컵 26일 개막…사상 최고 성적 노린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 중 안수지 선수가 헬멧을 고쳐 쓰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꼬리로 들어가던 턱걸이로 들어가던 프로가 된다면 보여주겠다”
2026년,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 WPBL(Women’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이 출범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남성 선수들이 전장에 나가면서 운영됐던 전미프로여자야구리그(AAGPBL·1943~1954) 이후 70년 만이다. ‘대체 리그’가 아닌 ‘정식 프로 무대’로서 새롭게 출범하는 WPBL에 한국 선수 3명이 도전장을 냈다.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서 활약 중인 투수 김라경, 대표팀 4번 타자 박주아, 포수 김현아 선수가 최근 WPBL 최종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테스트)을 통과했다. 11월 열릴 드래프트(구단 지명)에서 세 선수가 지명된다면 한국 최초의 ‘프로 여자야구선수’가 탄생하게 된다. 여성신문은 한국여자야구대표팀 훈련장을 찾아 세 선수를 만났다.
박주아 선수(왼쪽부터), 김라경 선수, 김현아 선수가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 훈련이 끝난 뒤 함께 걷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대표팀 4번 타자 박주아 선수가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방망이를 들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미국, 꿈의 무대로”
경남 하동 출신의 박주아(21) 선수는 창원시여자야구단 ‘창미야’ 소속 유격수로, 2023년 JTBC 예능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다. 21세의 젊은 선수이지만, 이미 6년째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박 선수는 “정말 꿈에 그리던 무대가 생겼다”며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전 세계 여자들이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한 “남자 선수들과 훈련할 때는 실력은 늘었지만, 마음 한켠엔 늘 불편함이 있었다”며 “이번엔 같은 목표를 가진 여자 선수들과 함께라서 즐거웠다”고 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연습경기 중 김현아 선수가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김현아(25) 선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을 앞둔 포수로,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빠르게 송구할 수 있는 수비력을 자랑한다. 김 선수는 “현장에는 순수하게 야구를 위해 달려온 선수들이 많았다”며 “WPBL이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명된다면 같은 꿈을 가진 여성 선수들과 함께 소속감을 느끼며 야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 중 김라경 선수가 대표팀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김라경(25) 선수는 14세 때 최고 구속 110km/h의 공을 던져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된 바 있다. 이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해 현재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 중이다. 그는 “지명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꼬리로 들어가도, 턱걸이로 들어가도 상관없다”며 “지명만 된다면 그때부터 보여주겠다. 그게 여자야구를 위해 해온 노력의 이유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세 선수가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유소녀 선수들과 여성 야구인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며 “WPBL의 출범은 여자야구계의 ‘유리천장’을 깨뜨린 상징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자에게 야구는 여전히 높은 ‘담장’
국내 여자야구는 여전히 기반이 부족하다. 여자 선수가 직업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실업리그나 프로리그가 없다. 2023년 천안시 주니어 여자야구단과 2025년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가 창단되기 전까지 엘리트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표팀 선수들은 사회인 야구팀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아 선수는 “현재 여자야구에는 실업팀이나 엘리트팀이 전혀 없다”며 “비소집 기간에는 사회인 팀에 소속돼 단순히 배팅 연습이나 캐치볼 정도의 훈련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 들어와야 포지션별 세분화된 전문 훈련이 가능하다”고 했다.
박주아 선수는 “남자 선수들은 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만, 여자야구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며 “대표팀이 사실상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모여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겨울에는 배재고, 금남고 등 남자 고등학교 팀과 함께 훈련하며 실전을 쌓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라경 선수는 “리틀야구부에서 활동하던 여자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사회인 팀뿐”이라며 “취미로 하는 팀과의 열정 차이를 느낀다”고 말했다. “결국 대표팀이 그 간극을 메워주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장을 뛰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직업이 아닌데 직업처럼 해야 하는 현실”
한국에서 야구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들은 주말마다 훈련장을 찾는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면서도 유니폼에 단 태극마크를 위해 자발적으로 고된 훈련을 이어간다.
김현아 선수는 “직업이 아닌데도 직업처럼 열정을 쏟아야 한다”며 “대표팀 활동과 국제대회를 거치며 야구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 소속 김라경 선수는 언뜻 보면 프로 선수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야구를 플레이하며 급여를 받는 '프로 선수'는 아니다. 소속 팀에 대해 질문하자, “프로라기보다 반(半)실업팀에 가깝다”며 “팀이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연결해주고, 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대표팀 선수단 모두가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모든 주말을 반납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며 “체계적 시스템은 부족하지만, 선수들의 열정은 세계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야구공을 박스에서 꺼내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그래도 ‘여자 야구’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야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여자야구만의 특징 때문이다.
박주아 선수는 “여자야구의 매력은 섬세함, 세밀함, 정확성에 있다”고 말했다. “남자처럼 150km 강속구나 120m 홈런은 아니지만, 90km의 공으로 구석을 찌르는 제구, 외야 앞에 떨어지는 안타, 정확한 1바운드 송구가 여자야구의 묘미”라고 했다.
김라경 선수는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잘 다진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세심함이 다르다”고 했고, 김현아 선수는 “힘의 싸움보다 전략과 정확도에서 승부가 갈린다”며 “그게 여자야구만의 재미”라고 말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타격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자야구,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
KBO에 따르면 남자 프로야구는 2025년 2년 연속 관중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 중 여성 관중 비율은 54.4%로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 여성에게 야구는 여전히 ‘보는 스포츠’다.
그러나 최근 여자야구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WPBL 출범이라는 호재와 함께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따르면 ‘야구를 하는 여성’의 수가 올해 1천 명을 넘어섰다. 11월에는 채널A에서 여자야구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추신수, 박세리, 김보름, 신수지, 윤석민 등이 출연해 여자야구의 대중화를 돕는다.
박주아 선수는 “남자 프로구단 산하에 여자야구팀이 생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일본은 요미우리, 한신, 세이부 같은 구단이 여자야구팀을 운영해 팬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김현아 선수는 “여자축구도 꾸준히 하다 보니 발전했다”며 “우리도 대회 성적과 미디어 관심이 늘면 여자야구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라경 선수는 “야구에 100%를 쏟아부어 ‘여자야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제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안정적인 운동 환경 조성과 엘리트 육성 기반 마련을 위해 전용구장 확보와 대회 유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제천, 제주, 경주, 공주, 익산, 울진 등 지자체와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시안컵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한국여자야구대표팀, 지금이 가장 강하다”
한국여자야구대표팀은 26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여자야구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세계 1위 일본, 2위 대만 등 14개국이 참가하며, 대표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동메달을 넘어서는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현아 선수는 “지금 대표팀은 제가 경험한 팀 중 가장 강하다”며 “서로 많이 성장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타석에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박주아 선수가 안타를 친 후 1루로 달리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1루 도루를 견제 당하자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보여주는 게 제 책임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스포츠는 모두의 것이다”며 “현실적 제약과 인식의 한계로 많은 여성들이 꿈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학업·진로·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야구는 아직 체계적인 기반이 부족하지만, 선수들은 ‘보여주기 위해’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WPBL은 그들에게 단순한 리그가 아닌 목표이자 희망이다. 김라경, 김현아, 박주아 세 선수의 도전은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스포츠사와 여성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강정희 선수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이 끝난 후 대표팀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손기자의 앵글]
WPBL 트라이아웃 통과한 김라경·김현아·박주아 선수
11월 드래프트 ‘눈앞’...한국 최초 '프로 여자 야구 선수' 도전
여자야구 아시안컵 26일 개막…사상 최고 성적 노린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 중 안수지 선수가 헬멧을 고쳐 쓰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꼬리로 들어가던 턱걸이로 들어가던 프로가 된다면 보여주겠다”
2026년,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 WPBL(Women’s Professional Baseball League) 이 출범한다. 2차 세계대전으로 남성 선수들이 전장에 나가면서 운영됐던 전미프로여자야구리그(AAGPBL·1943~1954) 이후 70년 만이다. ‘대체 리그’가 아닌 ‘정식 프로 무대’로서 새롭게 출범하는 WPBL에 한국 선수 3명이 도전장을 냈다.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서 활약 중인 투수 김라경, 대표팀 4번 타자 박주아, 포수 김현아 선수가 최근 WPBL 최종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테스트)을 통과했다. 11월 열릴 드래프트(구단 지명)에서 세 선수가 지명된다면 한국 최초의 ‘프로 여자야구선수’가 탄생하게 된다. 여성신문은 한국여자야구대표팀 훈련장을 찾아 세 선수를 만났다.
박주아 선수(왼쪽부터), 김라경 선수, 김현아 선수가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 훈련이 끝난 뒤 함께 걷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대표팀 4번 타자 박주아 선수가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방망이를 들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미국, 꿈의 무대로”
경남 하동 출신의 박주아(21) 선수는 창원시여자야구단 ‘창미야’ 소속 유격수로, 2023년 JTBC 예능 <최강야구> 트라이아웃에도 참가했다. 21세의 젊은 선수이지만, 이미 6년째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 중이다. 박 선수는 “정말 꿈에 그리던 무대가 생겼다”며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전 세계 여자들이 함께 야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또한 “남자 선수들과 훈련할 때는 실력은 늘었지만, 마음 한켠엔 늘 불편함이 있었다”며 “이번엔 같은 목표를 가진 여자 선수들과 함께라서 즐거웠다”고 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연습경기 중 김현아 선수가 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김현아(25) 선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을 앞둔 포수로,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빠르게 송구할 수 있는 수비력을 자랑한다. 김 선수는 “현장에는 순수하게 야구를 위해 달려온 선수들이 많았다”며 “WPBL이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지명된다면 같은 꿈을 가진 여성 선수들과 함께 소속감을 느끼며 야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 중 김라경 선수가 대표팀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김라경(25) 선수는 14세 때 최고 구속 110km/h의 공을 던져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 소개된 바 있다. 이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해 현재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 중이다. 그는 “지명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꼬리로 들어가도, 턱걸이로 들어가도 상관없다”며 “지명만 된다면 그때부터 보여주겠다. 그게 여자야구를 위해 해온 노력의 이유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세 선수가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 유소녀 선수들과 여성 야구인들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다”며 “WPBL의 출범은 여자야구계의 ‘유리천장’을 깨뜨린 상징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자에게 야구는 여전히 높은 ‘담장’
국내 여자야구는 여전히 기반이 부족하다. 여자 선수가 직업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실업리그나 프로리그가 없다. 2023년 천안시 주니어 여자야구단과 2025년 국민대학교 여자야구부가 창단되기 전까지 엘리트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대표팀 선수들은 사회인 야구팀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김현아 선수는 “현재 여자야구에는 실업팀이나 엘리트팀이 전혀 없다”며 “비소집 기간에는 사회인 팀에 소속돼 단순히 배팅 연습이나 캐치볼 정도의 훈련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에 들어와야 포지션별 세분화된 전문 훈련이 가능하다”고 했다.
박주아 선수는 “남자 선수들은 학교 시절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만, 여자야구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며 “대표팀이 사실상 유일하게 정기적으로 모여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겨울에는 배재고, 금남고 등 남자 고등학교 팀과 함께 훈련하며 실전을 쌓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라경 선수는 “리틀야구부에서 활동하던 여자 선수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사회인 팀뿐”이라며 “취미로 하는 팀과의 열정 차이를 느낀다”고 말했다. “결국 대표팀이 그 간극을 메워주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장을 뛰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직업이 아닌데 직업처럼 해야 하는 현실”
한국에서 야구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은 없다. 그러나 대표팀 선수들은 주말마다 훈련장을 찾는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하면서도 유니폼에 단 태극마크를 위해 자발적으로 고된 훈련을 이어간다.
김현아 선수는 “직업이 아닌데도 직업처럼 열정을 쏟아야 한다”며 “대표팀 활동과 국제대회를 거치며 야구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 소속 김라경 선수는 언뜻 보면 프로 선수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야구를 플레이하며 급여를 받는 '프로 선수'는 아니다. 소속 팀에 대해 질문하자, “프로라기보다 반(半)실업팀에 가깝다”며 “팀이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연결해주고, 그 수입으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대표팀 선수단 모두가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모든 주말을 반납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며 “체계적 시스템은 부족하지만, 선수들의 열정은 세계 어떤 팀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야구공을 박스에서 꺼내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그래도 ‘여자 야구’
선수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야구를 계속하는 이유는 여자야구만의 특징 때문이다.
박주아 선수는 “여자야구의 매력은 섬세함, 세밀함, 정확성에 있다”고 말했다. “남자처럼 150km 강속구나 120m 홈런은 아니지만, 90km의 공으로 구석을 찌르는 제구, 외야 앞에 떨어지는 안타, 정확한 1바운드 송구가 여자야구의 묘미”라고 했다.
김라경 선수는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잘 다진 선수들의 경기를 보면 세심함이 다르다”고 했고, 김현아 선수는 “힘의 싸움보다 전략과 정확도에서 승부가 갈린다”며 “그게 여자야구만의 재미”라고 말했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타격 연습을 준비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여자야구, ‘보는 스포츠’에서 ‘하는 스포츠’로
KBO에 따르면 남자 프로야구는 2025년 2년 연속 관중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이 중 여성 관중 비율은 54.4%로 절반을 넘어섰다. 한국 여성에게 야구는 여전히 ‘보는 스포츠’다.
그러나 최근 여자야구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WPBL 출범이라는 호재와 함께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따르면 ‘야구를 하는 여성’의 수가 올해 1천 명을 넘어섰다. 11월에는 채널A에서 여자야구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추신수, 박세리, 김보름, 신수지, 윤석민 등이 출연해 여자야구의 대중화를 돕는다.
박주아 선수는 “남자 프로구단 산하에 여자야구팀이 생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일본은 요미우리, 한신, 세이부 같은 구단이 여자야구팀을 운영해 팬들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김현아 선수는 “여자축구도 꾸준히 하다 보니 발전했다”며 “우리도 대회 성적과 미디어 관심이 늘면 여자야구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라경 선수는 “야구에 100%를 쏟아부어 ‘여자야구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제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안정적인 운동 환경 조성과 엘리트 육성 기반 마련을 위해 전용구장 확보와 대회 유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제천, 제주, 경주, 공주, 익산, 울진 등 지자체와 협력 중”이라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아시안컵에 대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한국여자야구대표팀, 지금이 가장 강하다”
한국여자야구대표팀은 26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여자야구 아시안컵에 출전한다. 세계 1위 일본, 2위 대만 등 14개국이 참가하며, 대표팀은 역대 최고 성적인 동메달을 넘어서는 성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김현아 선수는 “지금 대표팀은 제가 경험한 팀 중 가장 강하다”며 “서로 많이 성장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이번 대회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타석에서 타격을 준비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박주아 선수가 안타를 친 후 1루로 달리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대표팀 선수가 1루 도루를 견제 당하자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보여주는 게 제 책임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스포츠는 모두의 것이다”며 “현실적 제약과 인식의 한계로 많은 여성들이 꿈을 포기했지만, 이제는 학업·진로·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야구는 아직 체계적인 기반이 부족하지만, 선수들은 ‘보여주기 위해’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 WPBL은 그들에게 단순한 리그가 아닌 목표이자 희망이다. 김라경, 김현아, 박주아 세 선수의 도전은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스포츠사와 여성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에서 강정희 선수가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18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드림파크 여성야구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여자야구대표팀의 훈련이 끝난 후 대표팀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