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를 줄여볼까?…‘성인→주니어 규격’으로 바꿔 경기했더니 [여자야구 현주소(25)]

관리자
2023-11-24
조회수 85

KBO리그 41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자야구는 프로야구가 성장한 41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news-p.v1.20231120.b170ae6240ca4335b6432

2023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 사진제공 |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18.44m였던 거리는 17.50m로 0.94m가 줄었다. 타자가 느끼는 투수 공의 체감 속도가 더 빨라진 셈이다. 각 누상의 거리 역시 성인 규격이던 27.431m에서 주니어 규격인 25m로 줄었다. 덕분에 내야수들이 바빠졌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색다른 시도를 했다. 지난 19일 ‘창미야’의 우승으로 끝난 2023시즌 마지막 전국 여자야구 대회인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는 기존의 성인 규격의 야구장이 아닌, 주니어 구장에서 진행됐다.

 

news-p.v1.20231119.5c10d899b6c04dc595988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는 성인 규격이 아닌 주니어 규격으로 진행됐다.

직접 경기를 해 본 선수들의 반응은 ‘재밌고, 박진감이 넘쳤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국가대표 내야수 이지아(서울 후라)는 “주니어 규격에서 야구를 해보니, 내야는 온종일 전진수비를 하는 느낌이었다. 내야에서 벌어지는 상황도 많아졌고,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투수 공도 체감상 더 빨라지니 조금 더 수준 높은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국가대표 투수 곽민정(비밀리에)도 “거리가 짧아지니 더 박진감 넘쳤던 것 같다. 특히 3루쪽 땅볼 타구가 나오면 강팀이 아닌 이상 주자가 1루에서 여유 있게 살았는데 주니어 규격으로 바뀐 뒤 베이스간 거리가 짧아져서 그런지 아슬아슬하게 살거나 아웃되어서 더 재밌는 거 같다”며 미소 지었다.

 

국가대표 내야수 박소연(대전 레이디스)은 “확실히 거리가 줄어드니까 송구할 때 어깨 부담이 줄었다. 또 타구 체감 속도가 빨라져 수비 시 빠르게 대비해야 해 박진감이 생긴 것 같다. 주루할 때도 누상에 금방 도착하더라”라고 말했다.

news-p.v1.20231120.57245cacfaf04ea19118b

2023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 사진제공 |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투수와 포수의 거리가 한 발짝 가까워졌다. 지난 19일 3·4위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7이닝 동안 투혼의 93구를 던지며 완투승을 거둔 국가대표 투수 김보미(대전 레이디스)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거리가 약 1m 줄었다고 던지는 거 자체에 엄청 극적인 차이가 느껴지는 건 아니”라면서도 “그렇지만 심적으로 거리가 줄어서 부담이 덜하기도 하고, 타자들은 거리가 짧아져서 투수 공을 치기 더 부담스러울 거라는 생각에 좀 더 편하게 던져지는 것 같다”라고 했다.

김보미는 “거리가 짧아진 만큼 공 끝을 더 잘 살려서 포수 미트에 도달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데 내야 땅볼이 나오거나 하면, 베이스 간 거리도 줄어서 한 번이라도 공을 더듬으면 주자가 다 세이프가 되더라. 그래서 야수들이 긴장하는 걸 보고 더 자주 다독이게 됐다”며 웃었다.

news-p.v1.20231120.10b494af0a7949cc9277c

2023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 마구마구 전국여자야구대회. 사진제공 |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우승팀 ‘창미야’ 주장이자 국가대표 포수 김예서는 “주니어 규격에서 진행하니 선수들의 신체적 부담이 줄어들었고, 경기가 더 흥미진진하고 치열하게 되는 것 같다. 투수들도 더 강한 공을 던지는 느낌이었다”라고 했다.

김예서는 포수로서 투수를 리드할 때 “공이 빠르게 온 덕분에 상대 타자도 부담감을 느끼게 됐지만, 반대로 담장 거리 역시 가까워져, 힘 좋은 타자는 충분히 홈런을 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기에 더 집중하게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이 경기장 규격을 줄이는 시도를 한 건 야구 레전드들의 조언 때문이다. WBAK 황정희 회장은 “여자야구 국가대표팀 양상문 감독님이나, 프로야구선수협회 장동철 사무총장님 등 야구를 오래 해오셨던 분들께서 여자야구 전국대회 규격을 줄일 것을 제안하셨다”라고 밝혔다.

황 회장은 “냉정하게 여자야구는 아직 엘리트 선수가 없기 때문에 힘이나 기술이 부족하다. 굳이 프로야구와 같은 성인 규격에서 경기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 거리가 짧아지면 투수도 자신감이 더 생길 거고, 경기 진행에도 박진감을 더해줄 거라 봤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향후 모든 전국 여자야구 대회가 주니어 규격에서 치러지는 건 아니라고 했다. 황 회장은 “여자야구인들을 대상으로 의견 청취도 해봐야 하고, 내년에 열릴 전국대회 구장들이 주니어 구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제1회 프로야구선수협회장기대회’를 통해 주니어 규격에서 경기하며 긍정적인 면을 많이 봤다”라고 말했다.


news-p.v1.20230814.b4812d8f03fc4f02a6886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이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예선 대회를 마친 뒤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선더베이(캐나다)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


여자야구 국가대표가 나서는 국제대회는 여전히 프로야구와 같은 성인(표준) 규격이다. 여성이라고 성인 규격에서 공을 던지지 못하는 건 아니다. 힘과 기술이 좋은 미국·일본 여자야구 선수들은 물론, 대한민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은 표준 규격인 18.44m에서도 충분히 위력을 발휘한다.

다만, 아마추어 사회인 동호회로만 구성된 국내 여자야구 여건상 초심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경기 박진감을 높이는 게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한국여자야구연맹은 짧아진 거리에서 체감상 빨라진 공과 타구에 대응하다 보면, 실력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주니어 규격에서 열린 전국 여자야구 대회는 여자야구 활성화를 위한 시도 중 하나인 셈이다. et16@sportsseoul.com